연구활동         연구총서

[03]이선이/딩링: 중국 여성주의의 여정(한울아카데미, 201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91




목차

  • 제1장 딩링은 어떻게 살았을까?
    날카로운 시대 감성의 소유자 딩링의 일생
    1. 어린 시절: 비상을 꿈꾸며
    2. ‘자유의 천지’에서
    3. 소외로부터 출로를 찾아
    4. 문학 활동 개시에서 좌익작가연맹으로
    5. 난징 시대
    6. 옌안 시대에서 반우파투쟁까지

    제2장 딩링의 작품을 통해서 본 근대 중국과 젠더 I: 상하이 시기
    여성주의를 통한 ‘근대’ 비판과 ‘국민화’ 수용
    1. 들어가며
    2. ‘근대사회’가 지정한 여성의 자리(아내, 창부) 거부: ‘여성주의’ 탄생
    3. 국가·민족의 위기 속 ‘여성주의’의 선택: 여성의 ‘국민화’
    4. 나가며

    제3장 딩링의 작품을 통해서 본 근대 중국과 젠더 II: 옌안 시기
    여성의 ‘통합형 국민화’,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딜레마
    1. 들어가며
    2. 전의와 애국주의 고양의 ‘치어리더’로서
    3. 옌안 사회 내부의 여성 차별 비판
    4. 나가며

    제4장 중국 정치와 지식인
    왕스웨이와 딩링의 정풍운동 대응
    1. 들어가며
    2. 옌안 정풍운동의 배경
    3. 문예계의 움직임
    4. 지식인의 정풍 수용에서 보이는 사상의 굴절
    5. 나가며: 정풍 후의 여성계

    제5장 결론에 대신하여
    딩링 이후 리샤오장 그리고……
    1. 1980년대까지 중국 여성의 상황
    2. 리샤오장을 통해 본 중국 ‘여성주의’의 특질
    3. 국가와 여성: 1995년 베이징여성회의를 중심으로
    4. 소결

책 속으로

전쟁 시스템은 섹시즘[sexism(여성 차별주의, 남성 지상주의)]과 상호적 인과관계, 근본적인 공생 관계에 있다. 가부장제의 모든 가치와 전쟁이라는 조직화된 구조적 폭력의 기반은 계서화, 공격성, 관료제, 감정의 부정, 성·인종·계급을 묻지 않고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과 같은 ‘남성’적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가치 체계이다. 따라서 전쟁 체제의 모든 측면에서 성차별적 편견을 피하기 어렵다. _ 27쪽, “서장”

전쟁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병사가 되는 남성과 다르다. 여성은 남성이 행하는 전쟁의 ‘거울’ 역할을 해 일종의 ‘치어리더’가 되거나 집단적 ‘타자’ 역할을 한다. 마오쩌둥은 ‘지연시킨’ 게릴라전을 염두에 두고 여성에게 혁명의 주체로서의 독자적 역할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딩링의 경우를 보면 여성은 결코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딩링은 ‘신성’한 홍군이 되고자 했지만 그녀에게 부과되었던 것은 보조적 기능 아니면 선전대의 ‘치어리더’였다. 딩링은 말 그대로 서북전지복무단에서 삐라나 극본을 쓰고 연극을 상연함으로써 항일의 의의를 주창해 민중이 들고일어나게 하고 병사들을 격려하는 충실한 ‘치어리더’였던 것이다. _ 70쪽, “제1장”

딩링은 「몽쾌르」에서 결혼의 꿈에서 깨어난 여성 뱌오사오(表嫂)의 말을 빌려 ‘아내=매음부’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창부를 테마로 한 「칭윈 리의 작은 방 한 칸에서」에서는 창부의 입을 빌려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신부가 되는 것과 몸을 파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좋은지 정말로 결정하기 어렵다.” 이는 「몽쾌르」에서 뱌오사오가 아내를 창부에 간주했듯이, 아내가 되는 것이나 창부가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간파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사회에서 서로 다른 여성 영역인 것처럼 보이는 두 정황의 여성들을 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게끔 했던 딩링은 결국 근대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여성 영역의 본질을 간파했던 것이다. _ 95쪽, “제2장”

중국 혁명은 농민 혁명이며, 혁명의 영도 사상이었던 마오쩌둥 사상은 바로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과 농민 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치사상이었다. 따라서 중국 농민에게 뿌리 깊게 새겨진 유교적 가부장제가 중국의 혁명을 특징짓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옌안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는 ‘봉건잔재’가 아니라 옌안 사회의 문화가 ‘봉건’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_ 116쪽, “제3장”

중국 여성은 ‘국가’가 군사력과 생산력의 증강을 목표로 삼아 병력과 노동력으로 환원되는 사람을 명예 있는 자라고 평가했을 때, ‘여성성’을 부정하고 ‘남성과 동등하게’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러한 여성들은 남성들이 기대하는 ‘여성다움’을 일탈했다고 비판당한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 다시 ‘공정 영역’의 규범에 의해서 ‘낙오 분자’가 되며, 나아가 성적 매력이 없어진 여성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찾는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비극적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옌안 사회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중·삼중의 문제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_ 159쪽, “제3장”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중국의 건설을 위해서 ‘혁명’에 참가했던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결코 여성에게 해방적이지 않고 ‘혁명’과 전쟁의 모범 모델인 남성을 전형으로 만들어진 체제 속에서 괴로워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최우선 과제로 인해 여성은 자기 억압을 문제 삼는 것조차 방해받았던 것이다. 또한 ‘계급투쟁’을 목표로 한 사회주의혁명에서 해방되어야 할 여성은 옌안에 온 지식인 여성이 아니라 노동자·농민 계급에 속하는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_ 162쪽, “제3장”

이처럼 당시 지식인들은 전시체제 속에서 단결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객관적 상황’을 받아들여, 정치가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스웨이의 주장, 즉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화(인간 내면)의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 항상 ‘자기비판’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문예의 독자적인 역할이라는 주장이 올바르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나의 대의(정치)를 위해 투쟁하는 집단은 그 과제의 중요성 때문에 그 밖의 다른 문제를 놓치기 쉽다. 공산당은 완전한 ‘선’이라는 점을 주장해 단결을 강화하고 항일과 혁명 사업을 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_ 186쪽, “제4장”

전시 상황에서 ‘단결’이 강조되면서 사상 통제를 허용한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고, 마오쩌둥은 제멋대로 ‘엄격한 정풍’을 전개해나간다. (중략) 이때 사용되었던 것이 바로 ‘군중 노선’이다. 이는 셀든이 지적한 ‘집단역학’, 즉 거대한 심리학적 힘을 지닌 집단이 그 성원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원일치로 ‘병자’ 또는 ‘미치광이’라고 낙인 찍힌 개인들은 집단 규범에 대한 복종을 위해 두려워할 만한 압력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병자’에게 집단 가치와 규범의 전면적 수용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 외에는 다시 집단에 들어가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없다. _ 201쪽, “제4장”

당시 지식인들이 가졌던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강한 중국’을 건설한다는 이상은 당초부터 실현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로 그 이상을 실현해줄 주체로 공산당을 선택해 옌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판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중국은 과정 속에서 실현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 자진해서 그 이상을 접어야만 하는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_ 202쪽, “제4장”

정풍운동은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당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주의·주장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 원형은 50년 정도가 지나면서 지배적인 것으로 굳어 관성화되어버렸다. 1942년의 정풍운동이 (권력자 측에서 보면)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위기가 도와주고 내셔널리즘의 고양이 뒷받침했던 것이다. 현재는 분명 상황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옷을 바꿔 입은 내셔널리즘이 여성의 자주적인 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 증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완전하게 ‘마오쩌둥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 정치의 특질에 따른 것이다. _ 226쪽, “제5장”

 

출판사 서평

국가와 여성주의의 뒤얽힌 관계를 추적하다
딩링의 삶과 문학에 드리운 중국 여성주의의 명암

굴곡진 중국 근현대사 한가운데에 있었던 작가 딩링(丁玲)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중국 여성주의의 탄생과 흐름, 한계를 역사적으로 살핀다.
중국의 여성주의는 근대 속에 숨겨진 전근대적 이면을 간파하면서 출발했다. 그러나 항일 전쟁과 국공내전을 겪는 동안 억압되고 미뤄졌으며, 공산당 정부에서 정풍운동과 반우파투쟁을 거치며 좌절된다. 중국 여성주의의 이러한 여정을 함께했던 여성주의자 딩링의 궤적을 통해 오늘날 ‘사적 가부장제’는 약화되었으나 ‘공적 가부장제’는 강화된 기묘한 중국 여성주의의 뿌리를 파헤친다.

시대를 앞서간 자유로운 영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현실과 호흡하며 정치적 생존을 꾀한 여성

딩링의 삶과 문학으로 들여다본 중국의 여성주의

중국 근현대를 관통한 작가 딩링(1904~1986)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작품을 통해 중국 여성주의의 탄생과 전개를 살펴본다. 딩링은 중국에서 여성주의가 윤곽을 드러내기도 전에 여성의 눈으로 자신과 사회를 향해 예민한 더듬이를 세웠던 선구적인 여성주의자였다. 그러나 여성주의만을 고민하기에는 그녀를 둘러싼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가혹했다. 딩링의 궤적에는 중국 여성주의의 방향, 딜레마, 좌절이 그대로 겹쳐 있다. 지은이는 기존의 딩링 연구가 ‘혁명문학’ 프레임에 갇혀 여성으로서 딩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딩링의 작품과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딩링은 실패한 것일까? 중국 여성주의는 이대로 좌절된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딩링의 여정은 그 자체로 중국 여성주의의 뿌리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억압받는 중국 지식인 사회에 하나의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도 여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여성주의에서 하나의 대안이 가능한지에 대해 새롭게 질문을 던진다.

▶ 중국 여성에 대한 오해
중국 여성은 가정에서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 비중도 높은 편이다. 동아시아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왔지만 사실상 일터와 가정에서의 ‘2교대제’를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은 일상에서부터 남녀평등을 이뤄낸 곳이라며 감탄할 수도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우리의 오해다. 중국에서도 여성은 피곤하다. 공산당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사적 가부장제’가 약화되었지만 오히려 ‘공적 가부장제’는 그렇지 않다. 여성의 목소리는 미약하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여성해방’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 가정폭력 문제는 아직 음지에 있으며, 여성의 생리나 성은 여전히 금기시된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 국가가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사회주의 건설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라는 구호가 나왔고, 전족은 금지되었으며, 각종 행정법이 남녀평등을 법제화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는 일당체제의 국가에 봉쇄당하고 있다. 이 책은 딩링이라는 한 여성 작가의 삶과 문학을 통해 그 아찔한 괴리를 추적한다.

▶ 중국 여성주의의 탄생과 좌절을 생생하게 복원하다
중국 여성주의의 출발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그 시작점은 부모가 정한 결혼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추구한다는 ‘연애론’이었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아버지 가부장제’가 ‘남편 가부장제’로 바뀌는 것에 불과했다. 딩링은 절친했던 왕젠훙의 비극적인 연애와 죽음을 마주한 뒤 이러한 ‘연애론’의 기만적 측면을 깨닫는다. 이것이 딩링의 궤적으로 대표되는 중국 여성주의의 탄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키워간 것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쓴 작품들이다.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여성을 상품화하는 시선에 좌절했던 자신의 경험을 담은 데뷔작 「몽쾌르」를 시작으로, 『소피의 일기』, 「아마오 처녀」, 「웨이후」, 「1930년 상하이의 봄 1,2」 등에는 근대사회 속 여성의 삶을 고민한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모성’과 ‘창부성’이라는 이중기준, 여성의 굴레를 내면화하는 문제 등을 향한 예리한 시선도 보여준다. 그러나 항일 전쟁과 국공내전이 벌어지는 엄혹한 현실, 남편 후예핀이 국민당에 붙잡혀 처형당한 사건, 국민당에 의한 연금 등 개인과 사회의 상황이 겹쳐지면서 딩링의 여성주의는 선택을 요구받는다.
딩링은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책임을 갖고 공산당에 참가하면 ‘여성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톈자충」, 「물」, 『어머니』 등의 작품에는 이러한 생각 변화의 과정이 녹아 있다. 공산당 근거지인 옌안으로 옮겨 가서 쓴 작품들인 「아직 발사되지 않은 한 발의 총탄」, 「동녘마을 사건」, 「재회」, 「새로운 신념」 등에는 강렬한 애국주의를 담아냈다. 이는 항일 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 ‘여성해방’이 뒤따라올 것으로 믿었던 딩링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딩링의 ‘꿈’은 옌안 생활이 진행될수록 암울해진다. 여성 지식인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이중기준에 시달렸고, 강간 피해 여성들에게는 내부의 차별이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딩링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윽고 공산당 내부를 향했을 때, 사상 정화 운동인 ‘정풍운동’이 일어난다. 마오쩌둥 중심의 공산당 정부는 항일전 승리와 신중국 건설과 같은 여러 ‘대과제’를 들어 여성주의의 굴복을 강요한다. 딩링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생존을 꾀한 듯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비판당했으며, 당적이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딩링이 사망한 지 3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중국 여성주의는 여전히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다음’으로 미뤄진 여성주의를 기록하다
딩링의 궤적은 여성주의가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 장애물은 내셔널리즘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제3세계 국가의 여성주의는 내셔널리즘과 분리되기 어렵다. 근대 중국에서 이미 여성주의가 싹텄음에도, 중국 여성은 항일 전쟁의 ‘대의’ 앞에서 남성 중심의 전쟁 모델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 일제의 침략이 극심해질수록 여성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웠다. 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우리들의 정권을 수립”해야 하며, “여성해방은 계급투쟁을 통해 자연히 달성될” 것이므로 여성의 일방적인 일체화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정풍운동과 반우파투쟁에서 거듭된 ‘딩링 비판’, 중국의 자주적 여성주의 그룹과 공산당 정부가 충돌했던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결말은 대부분 초라했다.
여성주의가 늘 ‘다음’으로 밀려난 중국의 역사는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공분의 대상이 될 뿐, 약자로서 여성이 겪었던 문제라는 측면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또한 여성주의는 ‘우선’이 아니기 때문에 ‘까탈스러운’ 여성들의 주장으로 여겨지곤 한다. 여성주의는 언제나 “이룰 수 없는 약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 국가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여성 문제를 포함한 많은 사회문제에 대해 흔히 국가가 해결할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딩링을 통해 살펴본 중국 여성주의의 여정은 국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몸소 겪었던 딩링은 “남성에게 기대지 말고 자신 스스로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중국의 자주적 여성그룹의 대표 학자였던 리샤오장 또한 “여성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주의는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사회구조를 다시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또한 남성을 기준으로 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 여성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성취된다는 점,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세우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중국과 여성주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