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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유용태/한중관계의 역사와 현실: 근대외교 상호인식(한울아카데미, 2013)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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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장_ 중국의 지연된 근대외교와 한중관계 · 유용태

    제1부 한중 근대외교의 형성과 전개

    제1장_ 한중 근대외교의 실험(1895~1905) · 이은자
    제2장_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화민국의 외교관계(1912~1945)· 배경한
    제3장_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외교관계(1948~1992): ‘형제지방(兄弟之邦)’에서 ‘흉지지방(兇地之邦)’으로 · 손준식
    제4장_ 북한·중국 국경문제 해결에 관한 역사적 고찰(1950~1964) · 선즈화

    제2부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 상호인식의 변화

    제1장_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의 한국인식 · 왕위안저우
    제2장_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국인의 중국인식의 변화 · 백영서
    제3장_ 냉전시기 한국인의 대만인식: 일간지의 대만 관계 기사 분석을 중심으로 · 정문상
    제4장_ 대만에서의 중국인 정체성의 우여곡절과 전망 · 정훙성
    제5장_ 현대 중국의 핵정책과 일본의 평화운동 · 마루카와 데쓰시

책 속으로

당시 한국은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영국·일본 등 열강을 활용하여 중국과 근대 조약을 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조선을 서구 열강과 동격의 ‘평행의 국’으로 인정하는 ‘근대’ 조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1899년 한청통상조약(韓淸通商條約)의 체결은 중국이 기존의 조공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사절을 파견함으로써 근대 한중외교가 탄생하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51~52쪽)

당시의 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 세력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장제스와 국민정부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 한편으로 국민정부의 이러한 신중한 태도의 이면에는 다른 열강들 특히 미국과 소련의 입장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중국 측의 곤혹스런 입장이 들어 있었다. 중국 측에서는 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통하여 전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와 함께 임시정부에 대한 견제와 통제,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열강과의 관계를 고려해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까닭에 한국임시정부 승인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104~105쪽)

한국과 중화민국은 반공을 기초로 상호 협력과 우호관계를 추구하면서 서로를 ‘형제의 나라’ ‘굳건한 맹방’으로 부르고 대내외적으로 끊임없이 반공동맹관계를 선전하였지만, 양국관계는 결코 보기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실제로 양국 간에는 어떤 군사동맹협정도 체결되지 않았고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한중우호조약’도 1964년 11월에 와서야 겨우 체결된다. (122~123쪽)

더욱 중요한 점은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중국인은 쿵칭둥이 칭찬한 한국인의 혁명정신이 미국과 일본을 겨눌 뿐만 아니라 중국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의 민족자존의식은 줄곧 중국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은 근대 중한관계의 역사를 거의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이 방면의 사고가 가능한 인물이 드물다. … 중국인들에게 서울을 ‘한청(漢城)’이 아닌 ‘서우얼(首爾)’로 부르도록 하는 탈중국화 행위는, 도리어 중국인들이 근대 이전의 양국 관계사를 기억하도록 자극한다. (201~202쪽)

 

출판사 서평

한중 근대외교의 역사, 그리고 부상하는 중국
2012년은 한중외교 20주년이었다. 이념의 장벽을 걷고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이제 20년이 지난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이전의 중국과도 1899~1905년 청국과 대한제국 사이의 6년이 근대적 외교관계 수립의 전부이다. 역사적으로 참으로 특수했던 한중관계를 이 책은 외교와 상호인식 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포함하는 지난 100여 년의 양국관계가 한반도를 둘러싼 대국들 간의 경쟁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으며 이웃나라들의 사정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중국과 타국 간의 관계와 비교하여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현재의 한국 및 대만의 인식 등을 논의하였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문제 논쟁, 중국은 왜 쉽게 양보했나?
1950~1960년대 중국과 북한 양국의 국경문제 처리문제는, 국경문제 처리에 관한 국제법상의 일반 원칙에 따라 역사상 이미 체결된 국경조약에 근거해 볼 때 중대한 국경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북한의 예상치 못한 요구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단 6개월간의 협상을 거쳐 북중 국경의정서를 체결하였다. 마오쩌둥은 국가의 근본 이익이 달린 영토와 국경문제에서 왜 그토록 쉽게 양보했는가.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당시 중국이 처한 국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일성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북한이 제시한 영토에 관한 요구를 들어주게 된 것이다.

무역의 동반자이자 경쟁국가, 역사문화의 공유와 인식 충돌 속에서
개혁개방의 시대, 중국의 한국연구는 시종 미미한 지적 수준에 머물러왔고 진정 한국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부족한 데다가 연구태도 또한 지나치게 실리 위주여서 항상 중국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필요에만 입각해 있었다고 판단된다. 한편 현재 중국은 한국인의 대외인식 중 매우 중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인의 뇌리 속 중국 이미지의 변화는 완만하고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변화처럼 신속하지 못하다. 중국의 흥기가 동아시아발 세계의 구조적 대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이때, 어떤 요소들이 한국과 중국의 상호인식의 걸림돌이 되어 있는가?

이 책의 구성
1부에서는 조선에서의 상업적 이득을 지키기 위한 청국의 노력,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간의 지원과 갈등 관계, 반공동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이승만과 장제스의 경쟁, 북한과 중국 간의 ‘국가 대 국가’(國際)의 관계를 대신한 ‘당 대 당’(黨際)의 특수 관계 등을 다루었다. 2부에서는 중국의 한국인식이 한미동맹의 강도와 연동되어 있으며 극히 근시안적이고 피상적이라는 사실, 근대 이래 한국의 ‘천한 중국’상이 수교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특히 ‘동북공정’을 계기로 강화된 사정, 한국의 대만인식이 동아시아 냉전질서의 형성·균열과 연동되어 변화한 사정,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겨온 대만인의 절반이 이미 중국인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사정과 그들의 눈에 비친 대륙 중국, 중국이 소련으로부터의 자립을 위한 저비용 고효율의 국방경제 전략으로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정을 드러내었다.

신간 출간의의(출판사 서평)

한국의 무역량은 대중국무역이 대미국무역을 앞지른 지 오래되었다. 2012년 현재 대중국무역은 20.1%, 대미국무역은 9.5%로 나타난다. 중국은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에게는 무찔러야 할 ‘공산 오랑캐’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시장 중국’으로 바뀌었다. 한중 양국은 조공시대의 상하관계와 냉전시대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동반자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1월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중국근현대사학회가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발표문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중관계의 역사와 변화된 현실을 연관과 비교의 동아시아 지역사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결과를 담아냈다. 근대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중외교의 변화양상과,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상 한중관계를 북한과 대만과의 관계까지 고려하여 파악하였다. 이 러한 변화현실은 외교와 상호인식의 역사가 모두 자신의 필요에 따른 상대의 획일화요 기형화였음을 성찰하는 몫까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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